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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날

7월 15일.


하루종일 기분이 나빴다.
그리고 묘하게 들떠있었다.
그리고 오후 여섯시, 정확히 여섯시에 핸드폰 화면에 동생 이름이 떴다.

일단 회사에 보고하고, 동생과 논현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짐을 챙기는데
사촌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혹시 분당이면, 데리러 가겠다고.
논현까지는 택시를 탔던 것 같고, 만나서는 왜인지 한참 걸어서 버스를 타고,  또 버스를 탔다.

의외로, 아직 병실에 계셨다.
몇 주동안 주렁주렁 달려있던 기계를, 호흡기를, 다 떼 낸 할머니는
행복해보이기까지했다.
한발짝 뒤에서 멍하니 서있던 나는 마지막에 도착한 엄마가 할머니를 부여잡고 울때서야 비로소 코끝이 시큰했다.
입원하신 지 한 달 하고 딱 닷새만의 일.

둘쨋날 밤부터 비가 쏟아져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발인할 무렵엔 사그라들어
종일 슬쩍 슬쩍 흩뿌리는 정도로 와서 별 탈 없이 무사히 잘 모시고 왔다.


정신없이 지나갔던 것 같다.
상조회에서 파견 나오신 도우미분들이 꼼꼼하게 잘 챙겨주셔서,
음식 낭비도 별로 없었고,  음료나 주류도 꼼꼼히 챙겨놓아주셔서 정산하기에도 편했다.
너무 감사해서... 팁 좀 챙겨드리려고했더니 절대 안된다고...
도우미분들중에 리더인듯한 분이
대신에 한 번 안아보고 가자고 꼬옥 안아주고 가셨다.
다음엔 꼭 좋은 일로 봐요... 하고 말씀하시는데 눈물이 주르르 흐르더라.

서류떼러 나간 김에 사망신고하러 들렀던 구청에서 마주친 분도...
하얀 강아지가 팔랑팔랑 뛰어다니는게 꼭, 대니 어렸을 때 같아서 강아지에게 말을 걸었는데
빙긋 웃던 주인되시는 분이 우리 옷을 보고 미안한 얼굴로 누가 돌아가셨냐고...
동생이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니 한층 더 미안해진 얼굴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할머니 좋은 곳에 가셨을거에요, 하고 고개를 숙이셨다.
예상치못한 곳에서 마주친 따뜻함은 한층 더 고맙게 느껴지는 법이니...


수요일에 집에 와서 그대로 네시간을 기절해서 자고 간신히 눈을 떠서 창문만 닫고 다시 열한시간을 잤다
그러고 일어났는데도 앞도 뿌옇고, 머릿속도 뿌옇고, 상황 판단은 안되고.
월요일 아침에 어질러놓은 집은 그대로 추가로 어질러질뿐.
몽롱한 상태로 출근해서 일하다가 퇴근하면 밀린 일을 더 하고, 죽은듯이 잠들었다가 출근하기를 이틀.
토요일엔 결국 응급실에서 진통제를 세갠지 네갠지 맞고, 두시간만에 정신 차려서
피검사며 엑스레이며 검사 당하고, 결과 나오기 기다렸다가 '역시 아무 이상 없다'는 판정 받고 집에 와서 정신없이 잤다.
일요일 낮까지 한두시간에 한번씩 깨면서 계속 잤던 듯.
강제 취침 덕분에 지금은 위장 빼고는 거의 복구되었다.
이것도 뭐 조만간 복구 되겠지.